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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원의 절대자가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와 다시금 절대자가 된다.
퓨전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롯이지만 그 플롯은 어떤 작가가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서 그 재미가 크게 달라진다.
재미 없는 글을 쓰는 작가가 글을 쓴다면 글은 당연히 재미 없을 것이고, 필력이 좋은 작가는 그 소재를 한층 더 맛깔나게 살린다. 여기서 서울역 네크로맨서의 진설우 작가님은 글을 보다 맛있게 요리하는 요리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서울역 네크로맨서를 읽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우연찮게 접한 스낵북의 대표 일러스트가 서울역 네크로맨서의 일러스트였던 까닭. 글을 읽게 된 이유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정작 글을 읽기 시작한 뒤에는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네크로맨서라는 소재를 활용한 점. 일반적으로 네크로맨서가 가지는 이미지는 좋지 않다.
스켈레톤, 좀비, 리치 등 죽은 자들을 다스리는 군주라는 점에서 네크로맨서는 용사가 무찌르는 절대악을 상징하곤 한다.
하지만 진설우 작가님은 이런 네크로맨서를 절대적 카리스마의 군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위엄있는 존재로 설정해놓았다. 한 차원의 대표적인 성녀로 불리는 존재가 그를 보고 발등에 입을 맞출 정도이니 과연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을 정도.
산으로 가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금 본래 줄기로 돌려놓자면 주인공은 네크로맨서이다. 그것도 네크로맨서의 극에 달해 자신만의 영토를 가지고 그 영토 안에 살아있는 존재는 본인밖에 없었던 절대자. 그런데 현대로 돌아온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의아하다. 스켈레톤과 악마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더하여 그에게 천적이 될 수 있는 신성력을 다루는 이가 한명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와 그 위세가 약해진 주인공에게 누군가 덤빌수도 있겠다 싶지만 성장이 워낙 빠른 탓인지 어느샌가 지구 최강자가 되고, 금세 원래 차원에서 싸우던 악마들과 사투를 벌인다. 시간의 흐름은 그리 빠르지 않지만 사건의 진행은 시원시원하달까.
보다 많은 내용을 이야기하면 스포일러로 작가님께 누가 될 수 있으니 내용적인 면은 이정도로 하고,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춰볼까한다.
먼저 주인공은 강하다. 단순히 힘이 강한 것이 아니다. 요즘말로 그 멘탈이 단단하다. 차원이동 후 온갖 일을 겪었다는 그가 가진 경험은 풍부하다못해 넘칠 지경이고, 그러한 경험은 주인공이 어떤 위험이라도 여유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에게는 누구보다 무심하지만 자신을 따르는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다. 그 마인드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수억이 넘는 강화아이템들을 그 수하들에게 아낌 없이 퍼주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돈 모아서 무덤까지 들고 갈 것이냐는 비아냥이 있듯 번 돈을 쓰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어려움 없이 번 돈이고, 그저 종이쪼가리, 숫자 몇개에 불과한 것이기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소 이해가 안되는 것은 주위에 인간이 아닌 것, 죽은 자들만을 수하로 삼던 그가 현대로 돌아온 이후에는 아무 거부감 없이 살아 있는 자들을 자신의 수하로 삼고 아낀다는 점이다. 이런 성격이라면 기존의 차원에서도 충분히 살아있는 자들을 수하로 삼을 수 있었을텐데 왜 굳이 죽은 자들만을 이끌었는지 알 수 없다.
다음으로는 그 주변 인물들. 그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황금동아줄을 잡아 인생을 쫙 피게 된, 로또당첨자들과 같달까? 400만원이라는 돈을 4억으로 착각해 수하가 된 성구도 그렇고, 스카웃을 하려다 역으로 스카웃이 된 팀장과 대리, 특히 구형폰을 최신폰으로 속여 팔다 수하가 된, 속된말로 폰팔이 승훈의 경우가 그렇다. (팀장과 대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작가님께 죄송하다. 소설을 읽는동안 수없이 많이 보게 되는 것이 그들인데 정작 기억을 성이 기억나지 않는다.) 승훈이 기억나는 이유는 그가 씬스틸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지금 내가 작성하고 있는 리뷰처럼 글이 약간 산으로 가는 느낌도 들긴 하다. 퓨전판타지로 시작해서 신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던 중 갑작스럽게 매트릭스로 넘어가는 글을 보고 있자면 '이건 정말 상상도 못한 전개인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몇몇 장면에서는 최근 열심히 봤던 드라마 더블유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 물론 이부분은 소설 전체를 보신분만 이해가 가능하실테니 못보신 분들에게는 공감대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이 죄송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글은 확실히 재밌다. 작가님의 필력 때문인지 글의 흡인력이 뛰어나고 어느샌가 추가적인 결제를 하게 되고야 만다. 글이라는 것이 참 요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만담꾼 | 95개월 전좋아요 5